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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강경 덕유정

바따구따 2010. 10. 29. 22:57

논산 강경 덕유정

  

 덕유정

지정별: 논산 향토유적 제1호

지정일: 1992년 10월 28일

소재지: 논산시 강경읍 동흥리 47

  

※ 강경상고 앞 쪽으로 (옥녀봉 방향) 직진 하셔서 가시다 보면 오른편에 있습니다. 

들어가는 길 초입에는 안내판이 있으나 건물옆으로는 안내판이 없습니다.

 근처에 구 남일당 한약방건물이 있어 연계해서 관람하시면 좋습니다.

외부인 출입금지 구역이어서 내부 관람하고 싶은 분은 승낙을 받으셔야 합니다. 

 

경에서 평소 자주 지나가는 길가에 있었습니다. 초입에 안내판을 여러번 봤는데 자세히 어딘지는 몰랐습니다.

덕유정을 알리는 안내판이 바로 옆 길가에 있었더라면 좋았을껄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에도 한번 들려봐야지 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덕유정, 오늘 들려 봤습니다.

 

국궁 덕유정

덕유정 앞길로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게된 덕유정 알림석.

걸어가면 보일 텐데 차만 타고 다녀서 그런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국궁의 자존심과 자부심 그리고 힘이 느껴지는 비석입니다.

 

덕유정 앞쪽으로 주차장인 공터와 덕유정 건물이 보입니다. 

안내판 앞에 차가 있어서 제대로 못찍고 글로 대신해 봅니다. 대략 간추려서 적자면.. 

 

 덕유정은 전통적인 국궁 수련장으로 1793년(정조17년)에 정자를 짓고 덕유정이라 이름하였다.

1828년(순조28년) 계를 설립한 기록이 있으나 재정상 어려움이 있어 새로 계를 구성하고 정자를 중수하여 춘추에 회유하기로 했다.

은진현 지역내 많은 인사들이 활쏘기를 하던 곳으로 은진현 현감이 이곳에서 재판을 하기도 하였다.

  

덕유정 뒷 모습 

 

 2003년 4월부터 논산시 그린투어 사업과 연계하여 국궁 홍보를 목적으로 덕유정안에 국궁체험장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덕유정에서는 입사를 위해 기존 사원(射員) 2명의 추천이 있어야 한다. 이사회의 심의를 거쳐 새로운 사원의 입사가 확정되면 상견례를 겸한 입사례를 치른다.

또한 약 1개월 동안 진행되는 빈 활 당기기 후에 1~2개월 동안 주살쏘기를 마치고 나면 최초로 사대에서 과녁에 살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 집궁례를 치른다.
집궁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활쏘기를 익히면서 사대에 서서 첫 화살을 관중하여 행하는 1중례와 2중을 하여 행하는 2중례에 이어 3중례와 4중례를 마친 후

 몰기(5시 5중)하면 덕유정에서는 신입 사원에게 몰기를 기념하는 몰기패를 수여한다.

이때부터 사원은 정식으로 무사로 인정받는 접장 반열에 오르게 되어 이름 뒤에 호칭이 붙기도 한다.

 간추려 적으려도 지식이 없어서 자료를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덕유정은 현존하는 민간 사정 중 가장 오래된 사정이다.

3대 연중행사로 과녁제, 사정 건축기념일, 그리고 선생안제(先生案祭)를 지내고 있으며, 그중 선생안제는 가장 성대한 행사로 치러진다.
선생안제는 절차에 따라 전 사원의 참신례에 이어 초헌례, 독축, 아헌례, 종헌례, 그리고 원로 사원들과 제례에 참석한 유족의 참배 순으로 진행되었다.

 선생안제를 마친 후, 사원들의 상사대회로 개인전 및 단체전으로 나누어진 경기와 시상식을 가졌다. 

 

덕유정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된 팔작지붕 형태의 건물입니다. 현재는 그앞으로 지붕을 이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건립연대는 대략 1793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입구에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써있더군요. 그래서 안에 계신 분께 사진 좀 찍는다니깐 흔쾌히 승낙하셨습니다.

오신김에 건물 내부도 보라고 문을 열어 주시는데 안열리더라구요.

안봐도 괜찮다고 했는데 문이 안열리는걸 보니 날이 아니다 싶어 내부 사진은 포기 했습니다.

내친김에 이것저것 물어 보려는데 바쁜신것 같아서 사진만 찍고 왔습니다.^^

 

 덕유정 안쪽에는 관해루가 위치해 있습니다.

 

관해루

바다를 본다는 뜻의 현판이 걸린 이유는 이 누각이 원래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옥녀봉 봉수대 자리에 있던 것을 1883년 옮겨온 것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관해루 안쪽에는 관해루기(1948, 사백(회장) 석정 이은국)가 적혀 있습니다. 그 내용인즉

 

 덕유정은 강경의 사정이요, 관해루는 덕유정의 누각이다. 노소 사원들과 일반 내빈의 쉼터로 외적의 침략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 번에 걸쳐 중수하였다. 왜구의 침략 이래로 나라는 부서지고 임금은 죽었으니 가위 부서지는 둥지의 새알처럼 세상인심은 흩어져 어지럽고 선비의 기개는 그 기운을 잃어 빈번히도 흥미로운 일(활을 즐기는 여가)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다.

이에 폐하지 않고 근근이 이어온 것이 벌써 삼십여 성상이라. 이런 까닭으로 정의 사정은 기와를 이어 붙이고 흔들리며 늘 물이 스며 흙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전후의 형편이 이러한데도 전복될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니 이것만도 다행이 아닌가? 그러나 하늘의 별은 순환하여 넘침이 없고 반드시 되돌아오는 것이 정해진 일이어서 나라는 다시 흥하고 자주독립을 이루었으니 이제야 하늘과 땅은 그 자리를 정하고 해와 달은 그 밝음을 되찾으며 만물은 다시 생육하게 되었도다. 오호라 창성하도다.

이에 관해루를 중수하니 지난날 폐한 것들을 다시 거두어 새로이 경영하매 밭을 저울질하는 정신으로 하여 이 역시 경세제민의 영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선현을 닮지 못함을 외로이 여기며 스스로 정성을 다하여 정을 짓고 옛것을 계승하려 하노니, 선현의 말씀과 빛나는 유지를 받들어 뒷날로 나아감에 발전을 도모할 것이라. 상량문은 이미 먼저 지은 것이 있고 환경 또한 수려하여 장대하고 뛰어나며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하여 가히 보기에 좋도다. 활(궁술)에 대하여는 선현들께서 이미 말씀하신 바가 적지 않으니 다시 기록함은 필요치 않음이라.

 

덕유정은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국궁장입니다.

 

한국의 고대 사회에서 조선시대까지 국궁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무기 중 하나 였습니다.

전쟁뿐만아니라 평소에도 호연지기와 심신단련에서도 중요한 역활을 차지 하고 있었습니다.

5000년 역사와 함께 해온 국궁은 이제 이곳 덕유정에서 전통과 문화를 지키며 한민족의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료출처:  디지털논산문화대전, 덕유정 홈페이지, limys777님의 블로그, 한겨레신문기사, 덕유정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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