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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미내다리

바따구따 2010. 10. 27. 14:07

논산 미내다리

 

 논산 미내다리

지정별: 충청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11호

지정일: 1973년 12월 24일

소재지: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 541

 

※논산에서 강경읍내로 들어오는 입구에 강경천을 건너는 상강경다리가 있는데요.

바로 이 다리 건너기전 보시면 좌측으로 안내판이 보입니다.

둑방길이기 때문에 길 폭이 좁습니다.

시내버스를 이용하시는 분은 정거장이 입구에 있어서 내려서 걸어가셔야 합니다.  

입구 안내판을 따라 들어가셔서 직진으로 1km즘 가시면 오른편 강경천둔치에 미내다리가 보입니다. 

다리주변으로 화장실이나 매점등이 없기 때문에 강경읍내에서 미리 준비하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릴 무렵에 논산의 옛 다리인 미내다리와, 원목다리를 찾았습니다.

 이 두다리는 논산의 옛 다리로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선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리 이름이 삼거리에요^^)에 위치한 미내다리를 찾아 갔습니다.

 

강경다리 건너기 바로 전(논산방향에서) 좌측으로 미내다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좌측으로 꺾자마자 둑방길로 직진하시면 됩니다.

둑방길을 따라 가시다 보면 오른편 강경천 둔치에 돌로 만들어진 다리가 보이게 됩니다.

 

표지판을 보시면 영어로 '강경의 미내다리' 라고 써있습니다.

저 역시 미내다리가 강경에 속한다고 생각했고 많은 분들이 '강경에 있는 미내다리'라 쓰시고 말씀하시는데요.

현 주소상으로는 강경읍이 아니라 채운면에 속합니다.

 과거 강경과 연결되었을때는 그리써도 되지만 현재 굳이 '강경의 미내다리'라고 써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예전 이 미내다리는 충청도와 전라도를 이어주는 중요한 다리였습니다.

1731년(영조 7년)에 강경에 살던 석설산, 송만운이 주동이 되어 황산사람 유부업 등 3명과 여산의 강명달, 강지평이

 재물을 모아 1년 만에 다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글씨가 잘 안보이시죠? 대략 간추려서 쓰자면 

 미내다리는 미내천(현 강경천)에서 이름을 따왔다. 당시 교량은 (지금의 무지개 모양의 홍예교가 아닌) 평교형태였다.

'여지승람'에 나온 미내다리는 조수가 물러가면 바위가 보인다 해서 '조암교'라 불리우기도 하였다.

 이 곳에 당시 상황을 기록한 은진기록비가 있었으나 파손이 되어 부여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지역유지들이 세운 미내다리는 호남과 충청을 잇는 이 지역 최대 규모의 다리였습니다.

현재 모습은 1997년 폭풍우로 무너진 것을 2003년 논산시가 복원한것입니다.

 

미내다리는 일제 강점기 강경천 공사 때 둑을 새로 쌓고 물길을 새로 내면서 현재는 다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다리의 석재는 화강암으로 크기는 길이 30m, 폭 2.8m, 높이 4.5m입니다.

3개의 홍예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홍예가 크고 남북쪽이 약간 작습니다.

받침을 긴 장대석으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홍예석을 돌려 만든 형식입니다.

용머리와 호랑이 머리를 넣었다는데 용머리 밖에 못 봤습니다. 대충 본 탓일까요?

 

이 미내다리에 관련하여 전설이 내려 오고 있습니다. 길지만 한번 읽어 보시죠. 

 두 청년이 다리 공사를 맡기로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서 돈을 거두었다. 두 청년이 다리를 놓고 보니 돈이 남아서 어떻게 할까 의논하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기에는 너무나 적은 액수였다. 그렇다고 공금을 둘이 나누어 갖는다는 것도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두 청년은 고민 끝에 나중에 다리가 부서지면 남은 돈으로 보수를 하기로 결정하고 아무도 모르게 다리 근처에 돈을 묻어 놓았다.

몇 해가 지나도 다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두 청년을 훌륭한 기술자라고 칭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리를 놓았던 두 청년 중 한 명이 갑자기 깊은 병을 앓게 되었다. 

병이 깊은 것을 본 청년은 친구를 살리기 위해 다리 밑에 묻어 둔 돈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돈을 묻어 둔 장소를 파헤쳤다.

하지만 돈은 그곳에 없었다. 청년은 ‘친구가 이미 돈을 꺼내 갔구나. 그 돈을 써서 병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

청년의 짐작대로 그 돈은 이미 병이 든 청년이 몰래 써 버린 뒤였다.

병이 든 청년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더니 어느 날 저녁 큰 구렁이로 변해 버렸다. 돈을 훔친 벌을 받아 구렁이가 된 것이었다.

식구들은 울고불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구렁이로 변한 청년은 집을 나가 미내다리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 후로 구렁이는 이따금 다리 근처로 나와서 눈물을 지으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렇지만 다리 밑에 묻어 둔 돈을 꺼내 간 것이 알려지면서

누구 하나 구렁이를 동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흥, 꼴 좋다. 친구 몰래 돈을 훔쳐? 죽지 않고 구렁이가 된 것만도 다행이지.”

하고 침을 뱉으며 구렁이를 욕하였다. 그리하여 비가 오는 날이면 구렁이는 다리 밑에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또 다른 결말로는 하늘에서 구렁이를 나쁜 용으로 만들어 하늘로 오르게 하였다가 다시 땅에 떨어지게 하여 죽게 하였다고도 한다.

 

어떻게 재미있게 읽으셨는지요? 또 미내다리에 관한 설화가 있는데요.  

이 곳 논산·강경 일대에는 죽어서 염라대왕을 만나게 되면

 "너는 이승에 살 때 개태사의 가마솥, 관촉사의 미륵불, 강경의 미내다리를 보았느냐"고 묻는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곳에 사시는 분들은 저 세곳을 다녀와서 나중에 염라대왕 앞에서 자신있게 봤다고 말합시다^^

 

두 전설만 봐도 미내다리가 예전에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 다리였는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전설이었습니다. 

 

 

이 미내다리를 자기 나이대로 왔다 갔다 하면 오래 산다는 말이 내려 오고 있습니다.

 그때문인지 예전에 이곳에선 정월 대보름날이면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답교놀이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여기 방문하시는 분들은 위에 글처럼 나이대로 밟아 오래 살자구요~^^

 

과거에 사람들이 건너가면서 나누었던 희노애락 이야기를 이제는 다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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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예전에 찍은 것으로 채운면 미내다리 주변 풍경입니다.

 

 

 자료출처: 논산문화재탐방책자, 미내다리안내문, 네이버백과사전, 연합뉴스기사, 강경청년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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