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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의 문화유산에 빛나는 조선왕릉을 찾아(서울여행/태릉)

바따구따 2011. 9. 19. 07:30

        

(서울여행)

태릉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에 빛나는 조선왕릉을 찾아"

2011.9.13

 

 

명칭: 서울 태릉과 강릉 (2011년 명칭변경)

소재지: 서울 노원구 공릉동 223-19

지정별: 사적 제201호

지정일: 1970년 5월 26일

 

 

  여행 tip!

▷ 입장료는 어른기준 1000원입니다. 주차료는 없습니다.

▷ 관람시간은 3월~10월 기준 09시부터 18시30분까지입니다. 매표시간은 17시30분까지이므로 그 전에 입장가능합니다. 

▷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일입니다.

▷ 주변 관광지로 이스턴캐슬, 사격장, 골프장등이 있습니다.

▷ 자세한 문의사항은 태릉홈피 또는 02) 972-0370 (태릉관리소)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태릉.

이 태릉은 바따구따와도 인연과 추억이 깊은 곳이다. 

그렇다고 왕가쪽하고 친분이 있는것은 아니고 바로 이 근처에 살기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태릉은 단골 소풍장소였다. 

학교의 소풍, 백일장,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수 없이 가본 곳이다.


 그러다 머리가 커지고 발길이 뜸해지다 올 추석때 잠시 들려봤다. 

어렸을적 하니 잠시 생각나 한글자 더 적겠다.

 태릉입구역(명칭은 태릉입구지만 태릉하고는 거리가 멀다)에서 부터 

삼육대까지 이어지는 길은 현재 아파트로 즐비하지만 대략 20년전

 까지만해도 논밭이었다. 겨울이 되면 빈 논에 물을 대서 

스케이트장이 열리기도 하고 또 그 유명한 태릉갈비집들도 즐비한 곳이었다.


현재는 삼육대 고개 넘어 경기도까지 아파트로 꽉 차있어서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한다. 

개발된다는 것이 좋은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

나마 다행(?)인것은 이 태릉 주변으로는 개발이 안 되있어

 예전의 그 느낌을 어느 정도 살릴수가 있었다.

 

 ▲ 입구에서 만나는 조선왕릉 전시관.

언제 생겼지?? 조선왕릉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에 따라 생긴듯하다.

그럼 잠시 여기 들려 시청각자료를 보고가자.

 

 ▲ 국상 행렬 모형.

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왕이 승하하니 그 규모가 엄청 났을지니..

왕의 관을 왕릉까지 모시는데 5개월이란 세월이 

소요된다고 하니 그 예와 격식이 실로 대단하였을 것이다.

 

 ▲ 국기판 (복제)

왕과 왕비의 기일을 적어 놓은 현판.

 

 

 ▲ 왕과 왕비의 어보 (복제)

왕과 왕비가 승하 후 시호가 내려지면서 만들은 옥쇄.

 

이 외에도 많은 자료가 있는데 다 올리지는 못하고 간략하게 이 정도만.

아무튼 전시관을 다 둘러봤으면 태릉으로 가보자.

 원래 이곳은 태릉말고 강릉도 옆에 있으나 강릉은 출입이 금지 되어 있어 보지는 못하였다.

어렸을적도 출입제한이었는데 언제나 풀릴래나..

 

 능으로 들어가는 길은 사방이 하늘을 찌를듯한 소나무로

 둘러 쌓여 있어 경쾌한 기분과 동시에 엄숙한 느낌이 든다.

 

▲ 능의 입구인 홍살문 앞에 있는 금천교.

이 다리를 경계로 바깥세상과 왕의 공간으로 나뉜다.

왕의 공간이라니깐 표현이 조금 어색하나? 아무튼 능 말고 궁에서도 볼 수 있는 다리이다.

 

▲ 금천교를 지나면 보이는 홍살문과 정자각.

홍살문은 잡귀를 쫓는 의미로 붉게 칠해져 있으며 이곳이 신성한 곳임을 나타낸다.

주로 왕릉이나 서원, 향교 등에서 볼 수 있다. 멀리 정자각으로 들어가는 길은 신도와 어도이다.

신도(좌측)가 어도 보다 살짝 높여져 있다. 이는 신이 된 선대왕에 대한 존경과 예가 나타나 있음을 알 수있다. 

신도에는 앞에 보이듯이 신도로 다니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다. 지킬것은 지키면서 관람하자!

 

전반적인 이미지는 왕릉의 위엄보다는 쾌적하고 나무가 울창한 공원에 온 듯 했다.

 아무리 왕이라도 자연 앞에서는 사람일뿐.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 홍살문 옆 판위

책자에는 망료위라 나타나 있는데 용어 자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부족해 판위라 적겠다.

 판위란 왕릉으로 들어가기전 왕이 절을 하는 곳이다.

  

 홍살문을 지나 들어가면 정자각이 보인다. 정자각은 말그대로 丁자 모양을 해서 붙여졌다.

한국전쟁때 소실된것을 1994년 복원하였다.

 

 ▲ 정자각 내부

이곳이 주 제례를 올리는 곳이다. 뒷쪽 문은 열어 놓고 있고(아래 설명) 능을 바라 보게 되어 있다.

 

▲ 정자각 동쪽계단

 신(선왕의 혼)과 왕은 같이 홍살문을 지나 신도와 어도로 걸어 오게 된다.

그리고 이 정자각 동쪽 계단을 통해 같이 올라가서 정자각에서 제례를 올린다.

신도와 연결되는 왼쪽 계단은 신이 어도와 연결되는 오른쪽 계단은 왕이 올라간다.

제례가 끝나면 신은 정자각의 뒷문을 통해 능으로 들어가고 왕은 정자각의 서쪽 계단을 통해 내려간다.

 

 ▲ 정자각에서 바라본 능원

 

 ▲ 능의 관리인이 기거하던 수복방

 

 ▲ 신도비각. 문정왕후의 능임을 알려주는 신도비가 있다.

 

제례음식을 준비하는 수라방이 있던 자리인가??

 

추석을 맞이해 곳곳에 가족들과 놀러온 분들이 많이 보인다. 어렸을적 생각난다.^^

 

이제 능위로 올라가려고 했는데...어라~ 막혀있네..

예전에는 능 위쪽으로 가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해설사와 같이 제한적 관람을 하고 있다.

이 날은 아쉽게도 날짜가 안맞아 올라가보지 못하고 멀리서만 보고 왔다.

 

 ▲ 정자각 뒷쪽에는 축문을 태우던 자리인 예감이 있다.

이 옆으로 산신석이 있는데 안찍었나 보다. 산신석은 원래 이 산의 주인인 산신에게 제례를 올리는 곳인데

이는 풍수사상과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 조선시대 왕릉의 한 부분을 엿 볼수있다.

 

▲ 정자각에서 바라본 태릉. 능 옆으로 거대한 석상들이 있어 이곳이 왕릉임을 실감케했다.

그렇다면 이 태릉은 누구의 능인가? 일단 능이라하면 왕이나 왕비의 무덤을 가르키는 말이다.

태릉은 조선 제 11대 왕인 중종의 두번째 부인인 문정왕후 윤씨(1501~1565)의 무덤이다.

 본관은 파평으로 중종의 원부인 장경왕후가 1515년 죽자 1517년 17세의 나이로 왕비가 되었다.

중종이 있는 정릉에 묻히려 하였으나 침수등의 문제로 이곳에 홀로 묻히게 되었다.  

 

▲ 태릉 주변으로 예전 그대로 하늘을 찌를듯한 가로수 길이 나있어 지나가는 이에게 청량함을 주고 있다.

 

 

 

태릉의 주인인 문정왕후 그리고 능사인 봉은사 이야기가 있는데요.

그 뒷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것 같아 여기서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태릉 홈피에 나와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 들어가 보세요~^^

 

왕릉에 대한 기본적인 구성을 설명하느라 길어졌는데요 어디 능을 가나 기본적인 골격은 비슷합니다.

 200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유산으로 조선왕릉이 지정되어 이제는 전 세계인의 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자랑스런 우리 문화유산 조금이나마 알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포스팅을 하였고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곳이라 더 애착을 보탰습니다.

 

자연과 어울어진 우리네 문화유산! 신의 정원이라 극찬한 조선시대 왕릉!

바로 이 곳 태릉에서 조선왕조의 숨결을 느껴봅니다.

 

참고자료: 안내문, 안내책자, 문화재청, 태릉관리소,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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