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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함이 엿보이는 조선시대 장군의 집을 찾아서..(논산여행/이삼장군고택)

바따구따 2011. 9. 1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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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여행)

이삼장군 고택

"소박함이 엿보이는 조선시대 장군의 집을 찾아서.."

2011.8.28

 

 

명칭: 이삼장군고택

소재지: 충남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51

지정별: 충남 민속문화재 제7호

지정일: 1985년12월 31일

 

  여행 tip!

▷ 입장료 및 주차료는 없습니다.

▷ 주변 관광지로 충헌사, 주곡리 장승 등이 있습니다.

▷ 자세한 문의사항은 041) 730-3226 (논산시청 문화관광과)

 

8월의 끝이 보이는 28일 이날에 방문한 곳은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일대입니다.

그 첫번째 방문지로 이삼장군 고택을 찾았습니다. 그럼 장군님이 살았던 집으로 들어가봅시다!

 

▲ 이삼장군 고택 솟을대문.

장군의 가옥답게 계단을 통해 올라가고 그 위에 우뚝 솟은 대문이 있어 위엄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문은 닫혀 있어서 이 문 오른쪽으로 난 길을 통해 가옥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이삼 장군은 누구인가 알아보고 가자.

조선 영조때의 무관으로 자는 원백 호는 백일헌이며 본관은 함평이다.

 이 곳 상월면 주곡리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고 영조원년에 어영대장이 되었다.

 후에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저서로 '관서절요'가 있다.

 

▲ 고택 조감도(안내문 발췌). 전체적으로 'ㅁ'자 형태를 하고 있다.

 

이 고택은 이삼장군이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고 그 공으로 영조로부터 건립비가 하사되어 축조된 건물이다.

1727년 축조되어 그후 여러 개보수를 통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사랑채와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보인다. (사진 왼쪽 계단 있는 문)

이는 채나눔이 엄격한 일반적인 양반집의 구조와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대문 옆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어 고즈넉한 정취를 더하고 있다.

 

대문 양옆으로는 문간채를 두고 있다.

문간채란 문옆에 집이나 창고를 둔 것을 말하며 주로 하인들이 기거 하던 곳이다.

 

 

 ▲ 사랑채의 모습. 사랑채는 남자들의 공간이며 손님을 접대하던 곳이기도 하였다.

이삼 장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 안채 뒷마당으로 들어가는 문. 깨긋하게 정리된 안채 뒷마당이 보인다.

워낙 깔끔하고 정돈이 잘 되있어 지금 당장 들어가 살아도 문제 없을 듯 했다.

 

▲ 안채의 뒷 모습. 안채는 말 그대로 안쪽에 있는 집이며 주로 여자들의 공간이었다.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관리하시는 분이 오셔서 불을 때고 문을 열어 환기 시켜준다고 한다.

 

▲ 대청마루. 일반 양반집의 그것과는 다른 소박한 민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담장의 용도는 무엇일까? 

바따구따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담장이 없으면 앞마당에서 방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을것이다.

하지만 담장이 둘러져서 밖에서는 내부가 안보이게 된다.

 반대로 방에서는 담장 아래만 안보일 뿐 주변 풍경등은 고스란히 보였을것이다.

나름 바깥과 안채를 구분하면서 풍광등을 고려해서 만들어진게 아닌가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기에 맞는지 모르겠지만 행여 아시는 분있으면 알려 주길바란다.

 

 

 고택의 한쪽 가장 높은 곳에는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 사당의 모습

 

▲ 사당에서 바라본 안채. 굴뚝의 모습이 아기자기하다.

 

 

전반적으로 일반 양반집과는 다른 소박하고 독특한 구조를 띄고 있는 이삼장군 고택이었습니다.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다른 고택과 비교해 매우 관리가 잘 되어있었습니다.

주변에서 관리하시는 분이 오셔서 고생하시는 흔적이 엿보였습니다.

내부까지 들어갈수 있었으나 겉모습만 보고 와서 아쉬움이 남았지만 정갈하고 소박한 고택을 겉에서 바라만 봐도

이삼장군에 대한 성품을 알 수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참고자료: 안내문, 논산의 문화재, 문화재청, 디지털논산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