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 충청남도 구경

시묘살이를 위해 지어진 암자에 다다르다.(논산여행/영사암#2)

바따구따 2011. 8. 26. 06:30

 

38

 

(논산여행)

영사암#2

"시묘살이를 위해 지어진 암자에 다다르다."

2011.8.20

 

 

명칭: 영사암

소재지: 충남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산 11-1

지정별: 충남 유형문화재 제129호

지정일: 1989년 4월 20일

 

  여행 tip!

▷ 입장료 및 주차료는 없습니다.

▷ 따로 주차장이 없기에 길가에 세우고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 찾는 길은 영사암 1편을 참고하세요.

▷ 주변 관광지로 휴정서원, 탑정호 등이 있습니다.

▷ 자세한 문의사항은 041) 730-3226 (논산시청 문화관광과)

 

고생아닌 고생을 하면서 드디어 도착한 영사암.

그런데 먼저 눈에 띈건 잡초가 무성한 폐허가 다 되어가는 허름한 한옥이 보였다.

'영사암' 이 명칭을 처음 들었을때는 불교에서의 암자를 떠올렸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한옥으로 지어진 평범한 가정집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예전 이곳이 사찰이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 석탑재, 초석,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는 대좌석등이 주변에 널려 있다.

 

영사암은 조선 세조때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과 김겸광 형제가

아버지 김철산이 돌아 가신 후 3년동안 무덤을 지키며 시묘살이를 하기 위해 건립된 암자이다.

 

1475년 건립될 당시는 26칸의 건물이었으나 그후 개축, 보수되다가 지금의 4칸만 남아 오고 있다.

가옥을 오래 보존하기도 어렵고 하인들에게 맡기기도 어렵고 해서 승려를 두고 독경과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

 

규모는 작은 암자지만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팔작지붕을 한 영사암은 단아하고 기품이 있어 보인다.

 

사람이 살지 않아 관리가 제대로 안된 탓에 마당은 잡풀로 가득 차있다.

 

현재 보이는 영사암은 1875년(고종 12년)에 건축된 건물로 팔작지붕 형태의 전통한옥이다.

 

1465년에 걸린 영사암 현판과 암자 뒤의 마애불, 그리고 불교 관련 석재들은

영사암 짓기 이전인 고려시대부터 사찰이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데 이에 대한 자료는 없다고 한다.

 

부엌문의 문지방이 휘어진 원목을 그대로 사용해 자연스럽고 경쾌한 느낌이 난다.

 

영사암의 문들은 모두 폐쇄가 되었다. 왜 그럴까?

 이 영사암 들어가는 문 옆에는 안내문이 몇 개 있는데 그곳에서 답을 유추해본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 몇 년전에 이 건물이 압류를 당했다.

 그래서 출입문들은 폐쇄가 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떠났을 것이다.

현재는 광산김씨 종중 소유로 되어 있다고 한다.

 

우여곡절이 많은 이 영사암을 정리하자면

원래 고려시대부터 사찰이 있던 자리로 추정-> 1475년 26칸의 시묘살이를 위한 암자 건립->

 승려를 두고 제사를 모시게 함-> 다 없어지고 1875년 현재의 암자 건립->

근래까지 사람이 살았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소유권이 종중으로 넘어감

 

영사암 뒷편 . 근래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보인다.

 

 

이렇게 외진 곳의 문화재는 관리하기가 힘들어 사람이 살면서 관리를 해야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 문제가 생긴것 같다.

그 문제까지 자세히 알 필요는 없지만 그 일로 인해 이 영사암이 폐허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몇 년전의 일이라 현재는 마무리가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선 영사암 주변 쓰레기를 치웠으면 한다.

사람들이 찾건 안찾건 일단 보기 흉한건 사실이니깐..

 

영사암의 내용은 여기까지 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곳은 사찰관련 유적이 남아있는데요.

이 영사암 뒷 산으로 올라가면 그 유적 중 하나인 불상이 있습니다.

다음은 영사암의 마지막 내용인 '신풍리 마애불' 편입니다.

 

 참고자료: 안내문, 논산의 문화재,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