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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여행/송광사) 천년을 이어온 호국사찰

바따구따 2011. 8. 1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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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여행)

송광사

"천년을 이어온 호국사찰"

2011.8.6

 

 

 명칭: 완주 송광사

소재지: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569-2

 

 ※ 여행 tip!

 

▷입장료 및 주차 요금은 없습니다.

▷경내와 사찰 앞쪽으로 주차 할 수 있습니다.

▷관람시간은 07시~19시 입니다.

▷주변 관광지로 위봉산성, 위봉폭포,위봉사등이 있습니다.

▷자세한 문의사항은 063)243-8091 (송광사)

 

8월 6일자 완주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송광사를 다녀 왔습니다.

원래는 위봉사도 들리려 했는데 몇번을 지나쳐서 인연이 아니다 싶어 다음번을 기약했습니다.

이날은 주말이어서 그런지 냇가에 놀러온 피서객들과 사찰에 예불드리러온 신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 송광사로 진입하는 길

송광사에 들어가는 도로는 멋드러진 벚꽃길로 40년생 벚나무가 1.6km 구간에 걸쳐 늘어서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기도 한 곳이다.  

차가 어찌나 많았던지 한적한 사진을 찍으려 몇십분은 기다린듯 합니다.^^

 

송광사는 867년 (신라 경문왕 7년)에 구산선문의 개산조인 보조체징선사가 개창하였다.

 원래의 이름은 백련사였고 폐찰이 된 것을 순천 송광사의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중창 후 현재의 전각들은 1600년대 이후의 모습이다. 

병자호란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두 왕세자를 청나라에 볼모로 보낸 인조대왕이 두 왕세자의 무사환국과 국란의 아픔을

 부처님의 가호로써 치유하고자 대대적으로 중창한 인조대왕의 호국사찰이다.

 

▲ 사찰 옆 냇가에서는 피서객들의 물놀이가 한창이다.

 

▲ 송광사 일주문 (전북 유형문화재 제4호)

일주문은 현재의 위치로부터 3km 남쪽 밖인 나드리 (무주, 진안방면 도로 입구)라는 곳에 서있던 것을

1814년(순조 14년) 조계교가 있던 곳에 옮겼다가 1944년 해방되기 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여기에는 '입차문래자 막존지해'라는 글이 걸려 있는데 이 일주문을 들어오는 사람은 세속적이고

분별하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한마음으로 진리를 생각하여 불법에 귀의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 일주문을 지나 만나는 금강문 (전북 유형문화재 제 174호)

금강문은 조선후기에 지은 건물로 인왕문이라고도 불린다.

 

문안에는 불교의 수호신인 금강역사를 보게 되는데 이는 나라연금강과 밀적금강이다.

나라연금강은 입을 열고 있어 아금강(좌)이라 불리기도 하고 밀적금강은 입을 다물고 있어 훔금강(우)이라 불린다.

 범어의 첫글자와 마지막 글자인데 이는 불교의 영원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 옆에 보이는 상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다.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있으며 지혜를 상징하고(좌) 보현보살은 흰코끼리를 타고 있으며 실천을 상징한다.(우)

 

그리고 방문했을때 공사중이라서 못 본 사천왕문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

 이곳은 천왕문이 아닌 천왕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만들어진 사천왕상은 보물 제1255호로 조선시대 사천왕상 중 가장 빼어난 작품성을 지닌 조각상이다.

 

▲ 예전에 쓰였을 듯한 오래된 당간지주.

 

 

 

▲ 송광사 종루 ( 보물 제 1244호)

조선 세조때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로 1857년(철종 8년)에 다시 세웠다. 국내에는 이런 십자 모양의 종루는 유일하다.

종루의 지붕은 중앙에서 모아지는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고 마루 밑의 기둥들은 모두 원형기둥을 세워놓았다.

 이 십자각 내에는 범종, 법고, 목어 등이 있다.

 

종각안에 있는 범종(전북 유형문화재 제138호)은 크기는 높이107cm, 밑 너비 73cm이다.

동종의 쓰여진 글을 통해 1716년(숙종 42년) 광주 무등산 중심사에서 조성되었고, 그 뒤 1769년(영조 45년)에 보수한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종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종을 조성하여 예불 때에 타종하고 있다.

 

▲ 템플스테이가 한창인 관음전.

 

▲ 송광사 대웅전 (보물 제1243호)

1636년(인조 14년)에 벽암국사가 짓고 1857년(철종 8년)에 제봉선사가 공사를 더하여 완성하였다.

전내에는 석가여래삼존불이 안치되어 있으며 대웅전 벽면에는 중건 당시 그렸던 '벽지불탱화'와 '십오불탱화'가 남아 있다.

가운데 칸이 좁고 문위 벽면에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은 다른 대웅전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징이다.

 

▲ 현재에 사용되고 있는 당간

 

대웅전 현판은 선조의 8번째 아들이며 광해군의 동생인 의창군이 쓴 것이다. 송광사 개창비의 글도 의창군이 썼다.

1993년 본존불에서는 세 부처의 조성기가 발견되었는데 1641년(인조 5년) 6월 29일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환국을 기원하면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삼존불 사이 앞 쪽에 있는 나무로 만든 목조삼전패(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0호)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높이 2.28m로 앞면에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글씨가 있고, 뒷면에는 인조 때 조성되었다는 제작연대가 밝혀져 있다. 다른 두 점은 높이가 2.08m로 같으며, 뒷면에 1792년(정조 16년)에 수리하였다는 글씨가 적혀 있으며, 왕비와 세자임을 기록한 패이다.

 

▲ 송광사 지장전(전북 유형문화재 제168호)

지장 보살상 속에서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1640년에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등이 함께 만들어졌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면 대웅전, 나한전, 지장전의 불상이 땀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특히 대웅전의 불상은 KAL기 폭파사건, 12.12사건, 군산 훼리호 침몰사건, 강릉 잠수함 출몰,

그리고 97년 12월 2일부터 13일까지 엄청난 양의 땀과 눈물을 흘려 IMF를 예견하였다고 전해진다.

 

마음을 씻는다는 세심정. 이곳에서 마음을 깨끗히 씻어봅시다.^^

 

 

 

 

 

정말 송광사에는 보물이 많이 있네요. 제가 다 둘러보지도 못했지만 정말 곳곳에 볼거리가 많이 있습니다.

 불교신자도 아닌 제가 전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지루할까봐 설명만 대략 올렸습니다.

전각안의 불상, 탱화, 목패와 같은 문화재도 담으려 했는데 예불드리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구경만 하고 왔습니다.^^

아무튼 다 못 둘러본 점 아쉽지만 아쉬운만큼 다음번을 기약할수 있어서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참고자료: 안내문, 송광사, 한국관광공사,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