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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여행/경기전) 조선왕조의 숨결이 느껴지는 경기전을 찾아서

바따구따 2011. 8. 10.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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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여행)

경기전

"조선왕조의 숨결이 느껴지는 경기전을 찾아서"

2011.7.31

 

 

 

명칭: 전주 경기전

소재지: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102

지정별: 사적 제399호

지정일: 1991년 1월 9일

 

 ※ 여행 tip

▷입장료와 주차료는 무료입니다.

▷경기전 바로 앞 주차장이 있습니다.

▷관람시간은 하절기 09시부터 18시까지 동절기 09시부터 17시까지 입니다.

▷주변 관광지로 한옥마을, 전동성당, 풍남문등이 있습니다.

▷문의전화는 063) 287-1330 (경기전 안내소)

 

이날은 주변의 남부시장, 전동성당, 풍남문, 한옥마을의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로 인해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더구나 일요일이라 그런지 정말 많은 분들이 다녀 갔네요. 주차장도 만차라 동네를 빙빙 몇바퀴를 돌고 겨우 주차를 시켰습니다.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시기 위해 1410년(태종 1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전주, 경주, 평양 등의 어진 봉안처를 처음에는 어용전이라 불리었는데 1412년(태종 12년)에 태조 진전이라 하였다가 1442년(세종 24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칭하였다. 경기전은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때 소실되었으나 1614년(광해군 6년)에 중건되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 되었지만 복원사업으로 인해 옛 모습을 되찻고 있는 중이다.

 

▲ 경기전 앞의 하마비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 이라고 써있는 이 비석은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즉 이곳은 '매우 신성시 되는 곳이다' 라는 내용을 알리는 비석이다. 주로 하마비는 왕릉, 서원등의 입구에서 볼 수 있다.

이 비는 1614년에 세웠으며 1856년에 중각하였다.

잡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말에 뜨끔했지만 아닌척 안으로 들어갔습니다.ㅎㅎ

 

▲ 입구를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홍살문

이 홍살문 역시 이곳이 신성한 곳임을 나타내고 있다.

 

▲ 홍살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는 외삼문

평삼문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가운데 문은 신문이라 하여 신이 드나드는 문으로

 평소에는 막아 놓았으며 제례때 제사를 주관하는 헌관만 들어 갈 수 있다.

 

▲ 경기전 정전으로 들어가는 내삼문

이 문을 지나면 비로소 중심 건물인 정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위의 하마비, 홍살문, 외삼문, 내삼문, 사당으로 이어지는 형태는 서원, 향교, 종묘 등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건물 배치이다.

 

▲경기전 정전(보물 제1578호)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건물이다. 건물의 형태는 맞배지붕을 하였는데.

 대부분의 사당건물에는 이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곳은 엄숙한 곳이므로 정전에서는 조용히 하자구요^^

 

정전 앞쪽으로 나온 배향공간 지붕쪽 풍판(용어가 맞나요?)을 보면 두개의 돌출물이 보인다.

 

그것은 바로 거북이 조각인데 경기전이 화재를 피하고 영원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새겨놓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그 덕분인지 임진왜란 중에도 손상없이 보존이 되었다고 한다.

 

정전 옆으로는 복도인 회랑을 두었다.

 이 회랑은 건물을 구획하는데 쓰였지만 이곳이 신성한 곳이라는 뜻도 담겨져 있다.

 

▲ 조선 태조 어진 (보물 제931호)

이 어진은 바로 태조 이성계를 그린 초상화이다.

경주, 평양 등에 모셨던 어진은 임진왜란때 모두 불타 버리고 이곳의 어진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

1872년(고종 9년) 기존의 낡은 어진을 태워서 묻고 서울 영희전에 있던 태조 어진을 본떠 새로 그린것이다.

이 어진은 복사본이고 진품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 정전 동쪽에 있는 전주사고

1439년(세종 21년) 사헌부의 건의로 설치 되었으며 실록들을 보관하다

1445년 서울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 사고에 각각 1부씩 봉안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화재로 모두 불타고 손홍록, 안의 등이 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에 이안 사수 하여 이 전주사고의 실록만 남았다.

그래서 그 가치가 더욱 귀하다고 할 수 있다. 

 

전주사고는 정유재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1991년에 복원하였으며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재를 소중히 지켜 나갑시다.

 

▲ 정전 뒷편에 있는 조경묘 (전북 유형문화재 제16호)

전주이씨의 시조 이한과 시조비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출입이 금지 되어 있어 내부는 못 들어가봤습니다.

 

 

▲ 예종대왕태실과 비석 (전북 민속자료 제26호)

왕가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석식에 보관하는데 이를 태실이라 한다.

경기전의 태실은 조선 예종의 태를 항아리에 담아 넣어 둔 석실이다.

원래는 완주군 구이면 뒷산에 있었다고 하는데

 1920년 일제가 태항아리를 가져가면서 파괴되어 구이 초등학교 부근에 방치된 것을 1970년 현자리로 옮겼다.

 비석은 태실과 함께 옮긴것으로 예종대왕의 태실임을 알리는 글과 건립연대를 새겨놓았다.

 

경기전의 주변으로는 울창한 대밭을 비롯한 여러 나무들의 숲이 있어 관람객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습니다.

 정전 서쪽으로 제사때 사용된 부속건물등을 복원해 놓아서 당시 경기전의 규모나 생활상을 알수 있고,

뒷편으로 어진박물관이 있어 각종 유물에 관한 시청각 자료를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전통의 멋이 살아 있는 도시 전주의 경기전에서 조선왕조의 숨결을 느껴봅시다!

 

 ps: 이때만 (2011년) 해도 조용하니 산책하기도 좋고 ..

입장료 주차료도 무료였는데 언제가 부터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이제는 그 추억과 낭만을 즐기기엔 멀어졌네요..

아쉬울 따름입니다.. 전주 한옥마을 정말 괜찮은 곳이었는데...2015.1



참고자료: 안내문, 문화재청, 안내책자, 전주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