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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여행/화암사#2) 이곳이 여기에 있어 감사합니다.

바따구따 2011. 8. 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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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여행)

화암사 #2

"이곳이 여기에 있어 감사합니다."

2011.7.30

 

 

 화암사

위치: 전북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1078

문의전화: 063) 261- 7576

※ 입장료 및 주차요금은 없습니다.

주차장 진입 약3km 전부터 도로 폭이 좁아 주의가 필요합니다.

산위로 걸어 올라가는 길이 험하고 위험하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 1편부터 보세요^^ <화암사1편 보러가기>

풍경에 심취해 올라 오다보면 어느덧 병풍처럼 펼쳐진 사찰을 만나게 됩니다.

고달프고 힘든 길이었지만 멋드러진 계곡에서의 발걸음은

이 곳 화암사에서 끝이 나게되며 비로소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안도현

 

이 시를 철제계단에서 봤을때는 단지 멋지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화암사에 도착하고 다시 내려가는 길에 시를 읽어보니 뭔가 가슴에 울컥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언가를 형용하기에 말로 표현할수 없는 느낌! 그 느낌을 이 시에서 느꼈는데요.

 

 눈에 보이는 절인 불명산 화암사가 있다면 또 다른 화암사는 이 시에

 또 다른 화암사는 제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사찰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인 '우화루'

단청마저 빛을 잃었지만 오히려 그로인해 고풍스러움은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 우화루 (보물 제662호)

극락전의 정문과 같은 성격의 누문형식인데 정면은 누문형식으로 하고 후면은 단층건물로 반누각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보이는 건물은 1611년(광해군 3년)에 세워진 것으로 그 이후에도 수차례 수리를 하였으나 크게 변형이 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사찰 경내는 우화루 옆에 요사채 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나무의 결을 그대로 이용한 이 문틀이 오히려 경쾌하고 시원하게 보입니다. 그랭이 기법이라 불리나요?

 

 우화루의 뒷모습.

앞모습은 2층 누각인데 반해 뒷면은 단층건물로 보입니다. 절의 큰 행사에 사용했던 건물이라고 합니다.

 

 우화루 현판. '꽃비가 내린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우화루 내부 벽화들.

 

 우화루 맞은 편에는 '극락전'이 있습니다.

 

 ▲ 극락전 (보물 제663호)

이 건물은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하앙식 구조로 1605년 (선조 38년)에 지은 것입니다.

 하앙이란 기둥과 지붕사이에 끼운 목재인데 처마와 나란히 경사지게 있으며,

처마와 지붕의 무게를 고르게 받치고 있는 구조로 백제시대 건물에 쓰인 기법이라 합니다.

이 구조는 중국과 일본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유일한 건물로 목조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입니다.

 

극락전 안에는 전북 유형문화재 제40호인 동종이 있습니다. (사진은 못 찍었네요.)

 이 동종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1608~1623)때 다시 만들었는데 밤이면 저절로 종이 울려 스님과 신도를 깨웠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무기로 쓸 쇠붙이를 얻으려고 일본 헌병대가 오자 종이 스스로 울려 미리 위험을 알렸고

스님들이 종을 땅에 묻었다가 광복후에 꺼냈기에 이 종을 보존 할 수 있었다 합니다.

 

극락전 앞쪽 하앙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였고(좌측) 건물 뒤쪽 하앙에는 꾸밈없이 뾰족하게 다듬었습니다.(우측)

 

하늘의 선녀들이 각종 악기를 연주하며 이곳이 극락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넓지 않은 이 마당 가운데서 하늘 그리고 주변을 둘러 봅니다.

 눈을 감아 봅니다. 광할한 우주속에 작은 점인 제가 느껴집니다.

 

 

 

 

 화암사에 얽힌 설화

 옛날 임금님의 딸 연화공주가 원인모를 병에 걸려사경을 헤메고 있었는데 어떠한 약도 공주의 병에는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날 불심 깊은 임금님의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이미 너의 갸륵한 불심에 감동했노라'고 말하며 조그만 꽃잎 하나를 던져 주고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난 임금님은 부처님이 일러준 꽃을 찾기 위해 수소문했고 마침내 찾아내었는데 그 꽃은 불명산 바위에 핀 복수초였다.

 연못이 아닌 바위에 핀 꽃이라 임금님은 은혜의 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신하들에게 꽃을 가져오라 명령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신하들이 '누가 이 연꽃을 키우고 있는가를 알아보자'며 지켜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산 밑 연못에서 용 한마리가 나타나 꽃에 물을 주고 있는게 아닌가? 이를 목격한 신하는 모두 도망가고 용감한 신하 한 명만이 꽃을 꺾어 궁으로 돌아왔다. 꽃을 먹은 공주는 병이 나았고 임금님은 부처님의 은덕이라 생각해 그곳에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시게 했다.

 그 후 임금님과 신하들은 이곳에 와 불공을 드리는 한편 이 절 이름을 화암사라 지었다 한다.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규모가 큰 것은 더욱이 아닙니다.

오히려 단청도 빛을 잃었고 산속의 작고 오래된 절일뿐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고 느끼게 만들었을까요?

 깊어가는 여름날 산속의 작은 절 화암사에서 나를 찾아 봅니다.

내가 있어 화암사가 있고 화암사가 있기에 나를 만나게 됩니다.

 이곳이 여기에 있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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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안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