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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세월을 품은 대사찰은 오늘날 세월의 무상함이어라. (서산/보원사지)

바따구따 2012. 10. 18. 07:00

 

천년의 세월을 품은 대사찰은 오늘날 세월의 무상함이어라.

(서산/보원사지) 2012.10

 

 

 

안녕하세요? 바따구따입니다.^^

오늘은 한때는 천명의 승려가 있었다는

충남 서산의 대사찰 보원사지로 답사를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번에 포스팅한 서산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대원사지가 나오는데요.

올라가는 길에서 만난 방선암입니다. 방선암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담론을 나누었던 곳입니다.

 

 

방선암을 뒤로 하고 올라가니 산속인데도 불구하고 넓은 터가 보였습니다.

멀리 우뚝 솟은 탑과 당간지주가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보원사지는 말 그대로 보원사라는 사찰이 있던 터입니다.

언제 창건이 되었고 언제 폐사가 되었는지 확실한 연도는 모르지만

백제의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백제시대에 창건이 되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 보원사는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초까지 융성하였는데

당시 100개의 암자와 1000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하니

가히 엄청난 규모의 사찰이었음이 틀림 없었습니다.

 

그 규모는 근래 발굴조사를 통해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절터로 들어서니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는 당간지주가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보물 제103호)

당간지주란 절의 행사때 절 앞에 깃대(당간)를 세울 수 있게 옆에서 잡아주는 기둥(지주)을 말하죠.

즉 저 기둥 사이에 깃대가 있었다는 뜻이 되는데요.

이 크기만 봐도 얼마나 큰 당간이 걸렸는지 짐작을 하게 됩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당간지주와 아래 근래에 제작된 받침돌인 기단부와 비교해 보시죠.

천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않을 만큼 보존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이 구조물은 무엇일까요? 마치 욕조처럼 보이시죠? ^^

욕조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목욕을 한 것은 아니고 절에서 사용하는 물을 보관하는 구조물이랍니다.

이를 석조라고 부르는데요. 현재 국내에서 발견된 석조 중 가장 큰 규모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보물 제102호)

 

당간지주와 석조를 살펴보고 개울을 건너 갔습니다.

개울 건너 멀리 탑과 비석등이 보이시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고요.^^

 

그런데 너는 누구냐!

 

개울을 건너면 5층석탑을 만나게 되는데요.(보물 제104호)

한눈에 봐도 안정감과 날렵한 인상을 주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듯한 5층석탑 역시 이 절의 역사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신라말에서 고려초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그 시기를 가늠케 했습니다.

탑 윗부분을 보면 현재는 뼈(찰주)밖에 안 남아 있지만 광복 전까지는 원형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안내문 속에서 그 예전 화려한 조각의 상륜부를 만나 보았고요.

 

 탑의 하단부에는 이렇게 조각이 되어 있는데요.

맨 아래기단에는 사자상(오른쪽) 그 위에는 8부중상(왼쪽)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사자상은 말 그대로 사자를 새긴 것이고, 8부중상이란 불법을 지키는 8명의 신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 역시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 탑에서 보이는 조각 기법입니다.

 

 탑을 뒤로 하고 더 올라갔습니다. 서있는 이곳이 보원사지에서 가장 안쪽부분이 되겠는데요.

이곳에서 내려다 본 터입니다. 글 윗부분에서 넓다 크다 말로만 썼는데 이렇게 보니 아시겠죠?^^

 

 

보원사지 가장 안쪽에는 마지막 유적으로 법인국사의 사리탑과 비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글 윗부분에서 천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했죠. 바로 이 비석에 그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보원사가 가장 융성했을 때가 바로 이 법인국사가 보원사에 머물때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그럼 여기서 법인국사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 가봐야겠죠?

 

법인국사(탄문,보승)는 900년 신라시대에서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고,

 955년 고려시대 왕사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노후에 이 보원사에 기거하면서 입적을 했습니다.

 법인국사는 역대 왕들과 가까이 지냈는데 특히 고려 광종임금과는

 각별한 사이였고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법인국사 보승탑비(보물 제106호)에는 법인국사의 생애와 왕실에서의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비문의 내용은 다 알려드릴수 없으니 이수부분(비석 윗부분, 위왼쪽 사진)만 적어 보겠습니다.

'가야산, 보원사, 고국사제 중시법인 삼중대사지비'

그 제목만 봐도 이 비석이 누구에 대한 내용인줄 알 수 있죠.

조각이나 비문의 상태를 보니 전체적으로 보존이 매우 잘 되어 있었습니다.

 

 

 비석 옆에는 법인국사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이 세워져 있었습니다.(보물 제105호)

 

 

고려 광종은 정신적 지주인 법인국사가 입적하자

매우 슬퍼하며 이 부도를 세울 것을 지시하였다고 합니다.

 

임금의 지시로 세워졌으니 당대 최고의 석공이 만들었겠죠?

그 규모와 섬세한 조각수법이 오늘날 봐도 감탄을 하게 됩니다.

 

 

-문화재는 머리 아프다는 분들을 위해 포스팅 정리 들어가겠습니다.-

 

1. 서산의 보원사는 고려 광종때 왕사였던 법인국사가 머물렀고 입적한 곳.

2. 그때 승려가 천명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사찰이었음.

3. 자료가 없어 창건, 폐사 시기는 모르나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의 일환으로 폐사된 것으로 알려짐.

.

.

 

 

그리고...

.

.

 

 

4. 

인생사 일장춘몽이라 했던가요.

그 찬란하고 웅장했던 사찰은 온데간데 없고 시간은 흘러

황량한 벌판에 터와 유물만이 남아

이곳이 대사찰이었음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바따구따였습니다.

 

 

 

 

-보원사지 (사적 제316호)-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05

 

입장료 및 주차료 없습니다.

보원사지 입구 건너 공터에 주차를 할 수 있습니다.

주변 관광지로 문수사, 개심사,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등이 있습니다.

자세한 문의는 041) 660-2498 (서산시청 문화관광과)

 

참고자료: 문화재청, 서산시청, 한국관광공사, 안내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