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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도조로 추앙받는 이삼평을 찾아 떠난 공주여행

바따구따 2013. 2. 19. 06:30

일본에서 도조로 추앙받는 이삼평을 찾아 떠난 공주여행

(공주여행/이삼평비/학봉리도요지/계룡산도예촌) 2012.12~2013.2

 

이삼평 (또는 이참평. ?~1655)

혹시 이 이름을 들어 보신적 있으신가요?

바로 충남 공주 출신의 도공으로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피랍이 되어 일본 자기 문화를 꽃피운 인물입니다.

 

임진왜란은 한편으로 도자기 전쟁이라 불릴 만큼

 일본은 우리나라 도자기 문화와 기술을 빼앗아 갔는데요.

당시 그러한 사건을 바탕으로 오늘날 일본 도자기 기술과

그 예술성은 전세계에서 으뜸으로 뽑히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는 이삼평에 관한 유적지나 문헌 등을 찾아 보기 힘들어

 일본자료에 의존할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삼평의 고향인 공주시에 들려 그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 보았습니다.


△ 박정자 삼거리. 이 거리를 중심으로 이삼평의 여러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찾아간 곳은 대전과 공주를 연결하며

계룡산 동학사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박정자 삼거리'입니다.

 

여담으로 처음에 박정자라는 명칭을 들었을때는 사람이름인줄 알았는데

이 부근으로 밀양박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었고, 

이곳에 느티나무를 심고 정자를 세워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아무튼 오늘날에도 많은 차량으로 오가는

 박정자 삼거리에서 한 커다란 탑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삼평 기념비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곳에 이삼평 기념비가 세워진 것일까요?

 


<<일본 도자기의 원조로 추앙받는 이삼평>>


△ 공주 반포면에 건립된 이삼평비.


일본 아리타를 가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곳은 도자기의 도시라 불리고 있죠.

그 역사의 중심에는 이삼평이라는 인물이 자리 잡고 있는데요.

아리타 주민들이 이삼평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신사, 비석, 축제 등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일본에서는 도조(도자기의 조상) 또는 대은인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그 존경심은 일본에 국한되지 않고 고향인 이곳 공주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바로 보시는 이 비석은 아리타 주민들의 모금과 한일 협조에 의해 제작된 기념비입니다.



△ '일본자기시조 이삼평공기념비'라 새겨진 비석 아래는 건립배경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때 이삼평은 여러 도공들과 일본에 피랍이 되어 아리타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일본 최초로 도기가 아닌 자기가 생산이 되었으며

 지명을 딴 아리타 야키(또는 이마리 야키)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 아리타 도자기는 유럽으로 수출이 되면서 세계 도자기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되고,

 일본은 전세계로부터 막대한 이익과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 아리타 도자기가 유럽에서 얼마나 획기적이였냐면

독일 마이센 지방으로 들어가 유럽 최초의 도자기

만들어지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삼평이 살았던 시대 사용되었던 가마터>>


△ 옛 가마터인 학봉리 도요지와 그 앞으로 보이는 계룡산 전경.


그렇다면 이삼평은 어디서 태어났으며 피랍되기 전 어디서 도자기를 만들었을까요?


이삼평비가 바라보는 곳을 따라 동학사 방향으로 가다보면

사적 제333호로 지정된 옛 가마터 자리를 볼수 있습니다.

'공주 학봉리 도요지'라 불리는 이곳은 발굴조사로

 15~16세기 철회분청 가마터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삼평이 살았던 시대와 비슷한 시기로 이곳에서

이삼평은 여러 도공들과 도자기를 생산했겠죠?

저 아름답고 영험한 계룡산의 혼을 모아서 말이죠!

 

출생지에 관한 기록은 안타깝게 찾을 수가 없었지만

일본 고자료를 보면 조선 금강 출신이라 적혀져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출토된 파편과 아리타에서 출토된 파편 모양이

 같다는 점이 밝혀져 이 주변이 출생지라 밝혀졌습니다.

 

△ 이 도자기 파편들은 우리에게 잊혀진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역사를 말할때 만약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과연 이삼평이 우리나라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오늘날 그 역사적인 이름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

깨어진 도자기 파편들을 보니 역사의 아픔과 아이러니가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오늘날 계승되는 전통의 아름다움, 미래를 엿보다.>>

 

△ 계룡산 도자예술촌 입구와 복원된 전통오름가마.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그 명맥을 이어 가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공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계룡산 북쪽 자락에는 조선시대 철화분청사기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도예가분들이 뜻을 모아 '계룡산 도자예술촌'을 조성하였습니다.

 

이곳은 전통을 계승하면서 한편으로 일반인에게 관람, 구입, 체험, 축제 등

다양하게 변하는 시대의 추세도 따르고 있었습니다.

 


△ 공예품전시판매관에 전시된 철화분청사기.


또한 계룡산도예촌에서도 관람할 수 있지만 송산리 고분군(무령왕릉) 입구쪽에

공예품 전시판매관을 건립하여,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도 그 역사와 전통의 미를 알리고 있었습니다.




 과거와 오늘날 일본은 도자기로 막대한 이익과 명성을 얻고 있는데요.

그 중심에는 이삼평으로 대표되는 조선 도공들의 눈물과 혼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이번 이삼평을 찾아 떠난 공주 여행을 통해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일본이 아닌, 도자기의 한류가 전세계로 도래하길...

 그리고 정점에 우뚝 서길 이 기념비 앞에서 기원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바따구따였습니다.^^

 

 

 

 

연관있는 자료를 묶다보니 글이 길어졌는데요.

이것도 최대한 줄이고 줄인건데 ㅜㅜ 아무튼 요약 들어갑니다.

 

1. 이삼평과 여러 도공들은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피랍되어 일본 최초의 자기를 생산함.

2. 그 생산된 자기는 전세계로 퍼져나가 일본은 막대한 명성과 이익을 얻음.

3. 그래서 이삼평은 일본 도자기의 원조로 추앙됨.

4. 공주시 곳곳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잊혀진 그 역사와 명맥을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음.


<p.s: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기에 임진왜란으로 단어를 통일했습니다.

이삼평, 이참평 등 이름 역시 국내에서는 정확한 자료가 없어 이 글에서는 이삼평으로 통일했습니다.>


 

 참고 자료: 안내문, 안내책자, 일본은 한국이더라, 디지털공주문화대전, 문화재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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